라파엘Park 2010. 6. 26. 00:54

블로그를 운영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방문자수가 3만명이 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사람이 여러번 드나들었다고 해도
3만이라는 숫자는 내가 보기에 적은 숫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글들이 조회수가 많은가 들여다보니까

<붓다필드>에 관한 글의 조회수가 압도적이다.
그 다음으로 <가이아프로젝트>에 관한 글이 뒤를 이었다.

 

온라인으로는 처음 <신과 나눈 이야기 한국 네트워크>의 회원이 되면서(지금은 아니지만)

영성계와 인연이 닿았지만 워낙에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오프모임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신나이 모임에 한 두번 나갔었고, 정신세계원에 강의 들으러 몇 번 갔었고

그외에 장휘용교수의 <가이아 프로젝트>모임이 그나마 열심히 참석했었던 모임이다.

 

그나마 여타 영성단체는 어떻게든 접촉을 가져봤었는데

<붓다필드>는 전혀 그러질 못했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깨달음이었던 한때

깨달은 스승이 이끄는 <붓다필드>는
내게 퍽이나 유혹적이었다.

 

영성계에서 어떤 이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것은

일반학교에서 스승(선생님)을 모시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또, 돈을 벌기 위해 조직에 들어가 상사를 모시는 것과도 다르다.
산야신이 된다는 것은 생에 있어서의 일체의 가치를
본래면목에 두고 道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道를 구하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스승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道를 구한 자를 만날 수 있고

그를 통해 평생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
그리고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이번 생에

나는 엄청난 것을 놓칠 수가 있다.'

 

道의 맛을 아는 사람치고,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천성이 게으르고 의심이 많은 내가
산야신이 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얘기였다.
그렇기에 온라인상에서만 <붓다필드>주변을 맴돌았다.

 

<붓다필드> 초기 신나이 사이트에서 그쪽 회원들과 몇 번

필담을 나누고, 게이트의 법문을 읽어보자
그가 깨달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그 느낌이 명확하지만 그때만 해도

막연한 느낌으로만 다가왔다.

 

사실 그 느낌보다는 게이트의 법문과 그 제자들과 나눈 필담 사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아니라는 느낌이 먼저였다.

 

그래서 자연히 완성되었다라고는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감지되자

그가 멀리 앞서갔다고는 생각되어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진 것이다.

 

그 뒤로 한참을 그런 느낌의 배후가 그에 대한 질투가 아닌가 하고

돌아보았지만 질투가 섞여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에고였다.

 

사실 난 <붓다필드>에 감사한다.

<붓다필드>가 아니었다면 에고의 실체를 간파하는데 더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고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가이아 프로젝트>에서의 사명자 확인 작업은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내 안 깊숙히 묻혀있던, 어쩌면 그것은 수천 번의 삶을 지나며

나와 함께 했었을 것이다.

 

아, 그 미묘한 우월감이란...

그 절정과 함께 그것은 이제 엔딩을 향하고 있다.

 

마침 그 즈음 생활 속에서 그것이 드러나고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아, 그 처절한 고통이란 ...

미묘하면 미묘할수록 우월감은 더욱 증폭되었고
극도로 증폭된 그것이 해체되자
모든 것은 한없는 추락이었다.

 

그것은 마치 푸줏간에서 능숙한 칼잡이의 손놀림으로 해체되는

고깃덩이처럼 한점도 남김없이 해체되었다.

 

그러자 고요가 왔다.

 

삶이 그냥 흘러간다.

내가 흐르고자 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간다.

 

거기엔 깨달음도 거추장스럽다.

내가 누구이고자 하는 바람도 덧없다.

 

그냥 어디서 왔으니 어디로 가려니 한다.

 

어린시절 보았던 햇살이 거짓이 아니라 한다.

그 두근거림은 사라지고 고요함이 자리했지만
그것은 그것이다.
그것은 그냥 거기에 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

그래서 이것은 마법이다.

 

비극이 마법이 되는 순간의 마법 ...

내것이면서 내것이 아닌 것의 마법
그 모든 것이면서 그 모두가 아닌 것의 마법
살면서 사라지는 것의 마법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의 마법

 

사랑,,,?

그래 그 마법을 사랑이라고 부를까?

 

아니다. 그것도 사치다.

그것은 그냥 그것이다.

 

 

200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