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서 마법으로
비극에서 마법으로 36계 버전
라파엘Park
2010. 6. 26. 01:16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볼 눈 있는 자는 보아라!>
2천여년 전, 예수의 외침이다.
예수는
귀가 있으면서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어달라고, 보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예수의 외침이 거의 쓸모없을 정도로 소모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건 아이러니다.
만일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의 이 외침을 알아들었다면
예수는 굳이 외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
예수의 외침이 그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극이 마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치워져야 할 것이 있다.
들리는 것을 들리는 그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나'라는 자아,
에고가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것도 애매하다.
그 에고라는 녀석은
기를 쓰고 떼어낼수록 그만큼 버텨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에고의 숨바꼭질이 멈출 것이다.
에고의 가면놀이,
에고의 응석,
에고의 기만적 굴종,
에고의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제안,
심지어는 배신이나 무관심까지
갖은 형태의 에고의 버둥거림들이 그치는 날
비로소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비극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또한 마법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자신을 주저앉히던
주변의 비극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러면 무엇이 변한 것인가?
공교롭게도
그것은 그대로다.
단지 자신이 붙인 딱지들이 떼어질 뿐 ......
신기하지 않은가?
단지 색안경만 벗을 뿐인데도...
내가 붙여논 딱지가 떼어졌을 뿐인데도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다니...
...
못 믿겠다고...?
그렇다고 별 수는 없다.
에고가 떨어져나가고
자신이 제대로 듣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확인하는 수 밖에.
?
그때가 되어서 그래도 아니면....?
음,
그래도 아니면 ...?
36계를 칠테니
따라오든지 말든지 ...
그것은 자유!
200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