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서 마법으로
빨리 깨닫는 방법 부연설명
라파엘Park
2010. 6. 26. 01:39
사실, '깨닫다'에 대한 의미가 워낙 제각각이라
<빨리 깨닫는 방법>에서 제시한 방법으로 정말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시즌1에서 제시한 방법은 그女의 내면에서 들리는 어떤 '목소리'에게
빨리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졸랐을 때 '목소리'가 알려 준 방법이었고,
그것은 개인적으로 많은 효과가 있었다.
시즌2는 그 이후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이다.
워낙에 게으른 탓에 지속적이고 열정적인 수행을 했다고 자부하지 못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일에 자신을 돌아볼려고 했던 어떤 안테나가
의식의 한 쪽 구석에서나마 세워져 있었던 게 아닌 것인지 ...
그 결과 사티(sati)의 대상이 되었던
내안의 '나'가 어느날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것이 떨어져 나갔다.'라고 하기 보다는
어느날 문득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 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것은 그런 일은 어떤 명료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굳이 의식적으로 사티를 할려고 하지 않아도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데다가,
몸도 몸이려니와 무슨 의도를 갖든지 그것은 너무 거대해서 놓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경험한 위의 경험을 깨달음이라 부를 수 있는 지는 모르겠다.
위빠사나를 통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이후
어느날 그동안 들여다보던 '마음'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게 됐을 뿐인 것이다.
시즌2는 이런 경험들이 정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 '나', '에고' 라는 단어들이 섞여 쓰이고 있는데
이 말들 역시 내가 지나오면서 만난
단어들의 변천사 같은 것이다.
처음 호흡을 바라보면서 몸을 관찰하고 그에 따라
'아, 내 마음이 싫다는 것을 느끼는구나.' 하며 알아차림이 생길 때
아무 의문없이 '마음'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것이 떨어져 나갔을 때
자연스레 그것을 '나'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러저러한 경험과 앎들이 생기면서
그것들을 '에고'라 지칭하는 게 나은 표현이라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이 '에고'라는 녀석에 대해 점검을 해 보면
그것은 일시에 사라져 버린 듯 보이긴 하지만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복속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 상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렇게 되겠다. <에고의 복속> ...
시즌2의 핵심은 이 에고의 근간을 빨리 간파해서
결국에는 '에고'를 '복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자기 합리화'로 요약되었고
이 '자기 합리화'가 멈추는 때가 '에고'가 결박당하는 때로 본 것이다.
어쩌면 '묵언 수행'이 얻으려는 효과가 이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에고'의 속성상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려고 하는데
'에고'와의 대화의 단절(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은
'에고'에겐 무시무시한 압박 수단이 되고
이 압박의 종국엔 '에고'가 손을 들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에고'가 백기 투항을 한 이후에는
'에고'를 편하게 놔두데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2008.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