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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진실은 승리할 것인가? 2 : 진실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 어떻든 살아남긴 한다고 볼 때, 그렇다면... '그 마지막에서 진실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사람들은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진실이 승리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 현실은 배운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경험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으로만 본다면, 사실 '진실'은 실패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국새 파동,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여부, 공직 내정자들의 청문회 증언, 천안함 의혹들 ... 온통 '진실'이 조롱당하고 있는 일들 뿐이다. 이 현실이 가능하게 된 이면에는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고 배우긴 했지만 현실에선 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동의하는 사람들이 과반을 넘었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MB정권이 가능.. 더보기
눈을 뜰 수 있겠는가? 삶이 주는 고단함은 언젠가부터 익숙한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불행은 친숙해져버린지 이미 오래고 다가오는 새로움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이유와 그나마 구축해온 기존의 것들을 모두 부정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외면된다. 누구나 불행하다고 외치면서도 행복하고 싶다고 절규하면서도 달콤한 잠을 앗아간다는 이유로 눈썹을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귀찮기만 하다. 잠을 털어내지 못한 현실에서 마법은 단순히 눈속임만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마법은 눈을 뜰 때 시작된다. 아니 눈 뜸이 마법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달콤함을 떨쳐버리고 눈을 뜰 수 있겠는가? 2006/07/27 더보기
두려운가? 두려워 하라. 영성의 길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만큼 많이 언급되면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게 '두려움'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러긴 했는데 영성의 길을 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심지어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조롱의 구실이 되기도 하고 그만큼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반론의 여지없는 낙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두려움'에 대한 이러한 인식들은 넘어서야 할 '두려움' 못지 않은 또 다른 장애다. 어쩌면 넘어서야겠다는 한 가지 목표 만을 제시하는 '두려움' 자체 보다 '두려움'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이 더 큰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넘어서기 위해 직시가 쉬울 수 있어도 '불완전한 인식'은 인식하기.. 더보기
'All is One', 깃발을 들면서 프롤로그 인터넷을 하면서 주로 사용한 아이디가 'allisone' 이다.('allisone'이 문법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 아이디는 에서 만난 통찰, '모든 것은 하나'라는 뜻을 영어화한 것이다. 이 통찰이 너무 좋아 '신과 나눈 이야기 한국네트워크'에선 '모두하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대견한 것은 '모든 것은 하나'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이 아이디를 사용함으로써 이 놀라운 통찰을 끊임없이 되새기고자 했던 것이다. 이 아이디를 사용한지 벌써 1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10년은 'allisone'이 내 무의식에 뿌리를 내린 시기가 아닌가 한다. 실로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일들이 '모든 것은 하나'라는 통찰에 대한 시험이었다. 초기엔 내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