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구원은 없다 당나귀 발타자르 감독 로베르 브레송 (1966 / 스웨덴,프랑스) 출연 안느 비아젬스키 상세보기 '당나귀 발타자르'는 말 그대로 '발타자르'라 불리는 당나귀가 주인공이다. 솔직히 이 영화는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익히 보아왔던 상업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끼 '발타자르'가 나이가 들자 인간은 불에 달군 편자를 발굽에 박고 재갈을 물렸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발타자르의 주인이 바뀌지만 모진 고초와 학대는 변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발타자르가 안식을 얻는 때는 죽어서이다.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을 따라가 본다. 위의 사진은 총에 맞은 발타자르가 쓰러져가는 모습이다. 등 위의 자루에는 담배며 화장품, 금화 등 밀수품 들이 들어있다. .. 더보기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감독 톰 튀크베어 (2006 / 독일,프랑스,스페인) 상세보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몇 안되는 나의 독서이력에도 불구하고 탐독하다시피 했던 작가 중에 한명이다. 로 시작해서 ,,, 로 이르기까지 한때 그의 작품에 대한 탐닉이 중독에 가까웠던 적이 있다. 역시 쥐스킨트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해괴한 분위기 때문에라도 단숨에 읽어내려 갔었다. 그런 까닭에 영화 는 한적한 일상을 충분히 적셔 줄 단비가 되었다. 냄새라는 소재가 어떻게 영상화 되었을까라는 직업적인 호기심과 오래 잊고 있던 예전 독서물에 대한 향수가 영화를 보는 또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글읽기보다는 영상에 친숙해져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자 소설에선 감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이 떠올랐다. 나는 쥐스킨트가 .. 더보기 '진리'에 관한 아주 짧은 생각 메일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래 글을 발견했다. 날짜를 보니 2009년 2월 어느날 내가 나에게 보냈던 메일이다. 내용을 보니 한창 도론도담에서 불교 왜곡 논쟁을 했었을때 잊지 않을려고 메일을 보냈었던 같다. 지금은 그때의 열정도 사라졌고 또 누군가와 '진리'에 대해 논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래 글은 블로그에 글을 모은다는 취지로 포스팅 한다. .............................................................. '진리'를 인식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는 걸로 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진리를 살기에 따로 인식이 필요없는 지도 ... 인간에게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며 도전이다. 인간에게 그것은 '진리'를 인식함으로써 생명의 장.. 더보기 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3:빛과 소금처럼 되어라 '깨그' 최종편을 올린다. 지난 글에서 산에 오르는 일을 비유로 들어 '깨달음'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런 비유가 '깨달음'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메꿀려고 글을 올리고 난뒤 최종편을 예고했는데 그 최종편을 오늘에서야 올리는 것이다. 조금 더 고백하자면, '깨그' 최종편의 초고는 예고한 다음날 완성되었더랬다. 그런데 이 녀석을 올릴려면 제일 밑에 '등록'이라는 버튼을 클릭하면 되는데 몇 번이나 들여다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종내 올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나?'하고 돌이켜봤다. 무턱대고 덤벼든 탓이 가장 컸고 그러다보니 서둘러 최종편을 완성하자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깨달음'에 대한 .. 더보기 자존감 깨달음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는 가운데 근래에 신이 정의하는 '깨달음'이 새삼 와 닿는다. 다시 한번 '깨달음'에 대한 신의 정의를 옮겨 본다. "... 뭔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기 전에 직관력과 심능력을 사용하여 자기 내면깊이 들어가 자신의 느낌과 만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중에 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 또한 아주 드물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 는 경쾌함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너는 무거운 진동과는 전혀 관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네가 관찰하고 창조하고 체험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의 진동을 가벼워 지게(lighten) 할 것이다. 너희는 이것을 '깨달음(enlightenment)'이라 부를 것이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 신의 정의에.. 더보기 깨달음에 대한 잡설(雜說) 깨달음은 무엇일까?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실로 많은 답변이 가능하고 또 각각의 답변마다 나름의 적절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답변에다 하나 더 보태 본다. 이때, '과연 당신이 깨달음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라는 반문이 가능할텐데 반문(反問)은 반문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야기를 진전시켜 보겠다. 간단히 말해 깨달음은 오류 혹은 착각의 시정이다. 뭇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나와 우주와의 분리감이다. '나'와 세상 ... 그들에게 존재는 최소한 위의 언급이거나 둘 이상인 것이다. 붓다가 수행을 통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깨쳤다면 예수는 같은 말을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깨달음이라는 마라톤의 반환점이다. 그리고 이제 위의 두 가르침을 합쳐 '네 이.. 더보기 <믿음>에 관한 부연 설명: 살아 돌아온 믿음과 믿는대로 될지어다 착각은 자유라고 했으니까, 이왕 믿음 이야기 나온 거 마저 할려고 합니다. (근데 나, 왜 갑자기 이렇게 쀠~휠 받았지?) 사실, 믿음은 말로 표현되어질 때 훼손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굳건한 믿음은 말해질 필요가 없겠죠. 그러므로 누군가가 '믿습니다.'라고 할때 이것은 엄청난 진술이 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동어반복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믿습니다'란 진술은 그 안에 믿지 못할 지도 몰라...하는 의구심이 싹트는 것을 내비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도 마지막 순간에,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며 물었듯이 믿음은 그가 깨달은 자든, 어떤 자든 인간에겐 영원한 숙제라고 봅니다. 믿음은 처음에 쉽게 쓰였다가 앎과 이해에 자리를 내주는데 이 과정에서 믿음이 많이 오그라들고 .. 더보기 깨달음을 구하는 것에 대해 살아가면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된 사람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깨달음을 구한다. 그 집요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집착중에 제일 마지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물질 세상에서 숱한 환멸을 맛보았거나 트루먼쇼의 짐캐리처럼 이 세상에서의 비상구(EXIT)를 찾고 있는 중인 것이다. 집착의 제일 큰 하중이 실리는 만큼 깨달음을 구하는 일 역시 만만치가 않다. 이미 그것을 구했던 사람들은 알쏭달쏭한 말만 하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마케팅도 하고 있다. 마케팅이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올바른 깨달음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살 수도 없겠거니와 살 수만 있다면야... 오죽 좋겠어요) 그 거래의 후유증은 건곤일척으로 구하는 집착이기에 쉽사리 치유되.. 더보기 비극에서 마법으로 36계 버전 2천여년 전, 예수의 외침이다. 예수는 귀가 있으면서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어달라고, 보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예수의 외침이 거의 쓸모없을 정도로 소모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건 아이러니다. 만일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의 이 외침을 알아들었다면 예수는 굳이 외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 예수의 외침이 그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극이 마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치워져야 할 것이 있다. 들리는 것을 들리는 그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나'라는 자아, 에고가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것도 애매하다. 그 에고라는 녀석은 기를 .. 더보기 먹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It Is Finished" 프롤로그 : 오랜 의문, 세상은 비극인가? 아주 오래 품었던 의문이 김용철 변호사의 라는 책을 읽고 명확해졌다. 설마 했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이요, 삼성공화국이나 다름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에서 소개된 삼성의 각종 불법과 탈법들에 대해 심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로 전직 대통령을 벼랑으로 내몰고 전직 총리를 파렴치한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언론을 가진 나라 아닌가?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삼성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기만 할까? 오래 품었던 그 의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거라 유래가 깊다. 곤궁했던 어린 시절.. 더보기 다시 읽는 도마복음 7절: 복(福)과 화(禍)에 대한 예수의 정리 주제넘게 도마복음 읽기를 해보겠다고 나선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진도도 질척거리고 므흣하게 풀어진 것도 별로 없는 거 같아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글이라는게 진중히 앉아 써도 속도가 나지 않을 때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가 일쑤라 현업에 바빴던 1월 한달은 내가 봐도 블로그에 소홀했다. 그동안 간간이 관리했던 블로그를 다음은 2009 우수블로그로 선정해 주었다. 의외의 소식이라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우수블로그'라는 분류는 서서히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약간 등 떠밀리는 느낌은 있지만 이것도 내가 좋아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우 수블로그'라는 분류가 무색해지지 않게 노력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도마복음 7절을 다시 음미해 볼려고 한다. '내멋대..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