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 도마복음 읽기를 해보겠다고 나선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진도도 질척거리고
므흣하게 풀어진 것도 별로 없는 거 같아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글이라는게 진중히 앉아 써도 속도가 나지 않을 때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가 일쑤라
현업에 바빴던 1월 한달은 내가 봐도 블로그에 소홀했다.
그동안 간간이 관리했던 블로그를 다음은 2009 우수블로그로 선정해 주었다. 의외의 소식이라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우수블로그'라는 분류는 서서히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약간 등 떠밀리는 느낌은 있지만 이것도 내가 좋아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우
수블로그'라는 분류가 무색해지지 않게 노력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도마복음 7절을 다시 음미해 볼려고 한다.
'내멋대로 도마복음 읽기'에서 도마복음 7절을 지나가긴 했지만,
그동안 이 7절은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7절의 의미가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졌다.
사람에게 먹힌 사자 ...
사자에게 먹힌 사람 ...
사자에겐 복이 있고, 사람에겐 화가 있다 ...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자는 복이 있도다. 그 사자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그 사자도 사람이 되기 때문이니라."
......
붓다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우주가 이루어져 있는 바를 표현했다면
이 도마복음 7절은 세상살이가 이루어져 가는 방식을 갈파한 것이다.
이런 식이다.
먼저, 사람 대신에 '선(善)'을, 사자 대신에 '악(惡)'을 넣어보자.
그러면 이렇게 된다.
'선'에게 먹힘을 당하는 '악'은 복이 있다. 그 '악'은 '선'이 되기 때문이라.
'악'에게 먹힘을 당하는 '선'에게는 화가 있다. 그 '악'도 '선'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예수께서 제시한 이 정리에 위의 방식으로 대입될 수 있다.
이번엔 '에고'를 넣어본다.
그대에게 먹힘을 당하는 '에고'는 복이 있다.
'에고'에게 먹힘을 당하는 그대에게 화가 있다.
.
.
.
도마복음 7절에 대한 이런 이해는
영성의 길을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7절의 비유가 가장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곳은
현재의 대한민국 정국이다.
눈치빠른 분들은 벌써 눈치 채셨겠다.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자'에서
사람을 '민주주의'로 바꿔보면 된다.
그럼, 사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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