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길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만큼 많이 언급되면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게 '두려움'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러긴 했는데 영성의 길을 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심지어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조롱의 구실이 되기도 하고
그만큼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반론의 여지없는 낙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두려움'에 대한 이러한 인식들은
넘어서야 할 '두려움' 못지 않은
또 다른 장애다.
어쩌면
넘어서야겠다는 한 가지 목표 만을 제시하는 '두려움' 자체 보다
'두려움'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이 더 큰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넘어서기 위해 직시가 쉬울 수 있어도
'불완전한 인식'은 인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존재에 내재된 속성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두려움'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을 잇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두려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두려움'의 근거는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이 '두려움'은 두려움의 시작이자 무의식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는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나중에 설명될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솔직해진다면 '두려움'이 사라진게 아니라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는 '두려움'이 분리라는 환상에서 온 것임을 아는 시기라서
'분리'가 환상임을 명확히 하면 할수록
위에서 언급한 불완전한 인식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우를 범하기 쉬운 때다.
이 단계를 거쳐 '두려움'을 다시 바라보게 될 때가 있는데
이 때, '두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기 시작한다.
이제 '두려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이 아니라
고맙고 소중한 것이 된다.
위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영혼 차원에서 그렇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영혼은 '두려움'을 모른다.
"All is One", '우리가 하나.'라는 깨달음이
무의식을 뚫고 들어가서는 믿음으로 단단해 질 때
'두려움'은 사라질, 아니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준비를 한다.
자, 영혼 차원에 들어서면 두려워 지지 않는다.
그러니, 두렵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충분히 최선을 다해서 두려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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