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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승리할 것인가? : 희망의 이유, 어떻든 당신이 살아남아야 할 까닭


MB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고 한다. MB가 대통령이 되면 감당 못할 일들이 벌어지리란 것을 짐작은 했었지만, 현실은 더 혹독하다. 이 혹독함은, '짐작'은 했지만 뒷짐지고 있던 한 발 빼기에 대한 매서운 질타이기도 하다. 게다가 더 안타까운 것은 이 혹독한 현실이 어떻든 깨어나기는 하는 악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련의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과연 이 혹독한 현실이 바뀔 수는 있는 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상당히 오래동안 희망을 놓았더랬다. 살아오는 내내, '희망'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MB정권은 거의 완벽하게 내게서 '희망'을 가져가 버렸다. '희망'이 사라지니 어느새 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어느날 좀비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갈 때까지 가보자. 그리고 끝은 어떨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인 것이다. 재밌지 않은가? '희망'이 없어도 호기심은 살아있다는 것이... 그런데 호기심은 일었지만 좀비 눈에도 현실은 여전히 가관이다. 해서 호기심을 부추기는 뜻에서 또 임기의 반을 넘긴 기념에서라도 중간 점검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어떻게 '희망'이 숨조차 쉬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곰곰히 따져보니 '희망'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질식케 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이 괴물은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그나마 듬성듬성 남아있던 '희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좀비들을 양산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좀비만이 남을 것이다. 어쩌면 이 괴물의 실체는 절망을 전파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괴물은 또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우리안에 있는 욕망을 구걸하면서 시작되었다. 구차스러웠지만 선거때 우리는 저마다 단 한 표를 행사했을 뿐이다. 나의 욕망을 채워줄 지도 모른다는 유혹은 14번의 전과에, BBK에 눈을 감게 했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저마다 기표소의 천막안에서 이렇게 읊조리지는 않았을까?
'단지 한 표일 뿐이야. 다른 사람들이 안 찍으면 못 될텐데, 뭘. 그렇더라도 손해볼 건 없지. 어차피 대통령을 해서는 안될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신문들이 이 욕망에 편승했다. 대다수의 욕망을 확인한 신문들에게 대한민국은 단지 협잡의 대상일 뿐이었다. 도덕의 잣대를 집어던진 욕망의 주인들은 신문들에게 죄의식을 거두어 주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제 똑같은 놈이 된 것이다. 그래도 괴물이 홍역을 단단히 치르긴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괴물의 내성을 키워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양심들이 지키고자 했던 일말의 저항에 대해 학습하게 했다. 그리고 우선 시간이 괴물의 편이었다. 시간 앞에서 '희망'은 무기력해지고 그럴수록 괴물은 득의양양 했다. 그럼에도 내딴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희망'의 목줄을 딴 것은 같은 편이었다. 아니 어쩌면 같은 편인 줄 알아서 최후가 더 앞당겨진 것일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승리를 위해 덩치 큰 야당에게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로서는 괴물에 대해 적당히 저항하면서 안주할 수 있는데 굳이 힘든 싸움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괴물은 국민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고 상황의 고착은 조그맣지만 기득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구차하긴 마찬가지지만 내 코가 석자라는 현실 논리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구실은 충분하다. 구차한 정도를 따지자면 진보적이라 자칭하는 신문들도 나을 게 없다. 보수 신문들이 욕망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면 이 신문들은 차마 그렇게는 못하지만 욕망만은 남 못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신문들의 괴물에 대한 일정한 견제는 숨겨놓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당성 확보에 다름아니다. 그들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질식에 대해 외면했다. 게다가 '관장사'라는 이름으로 졸도 직전의 민주주의를 살리려는 진정성을 조롱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훼손됐던 민주주의는 같은 편이었으면 했던 이들로부터 다시 폄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도 진실은 승리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유효해 보인다. 희망이 없는데, 왜? 반환점을 돌았으니까. '희망'은 보이지 않지만, 숨을 쉬면 쉴수록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 그때가 되면 나는 엄정한 한 표를 행사할 수가 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살아있는 자체가 '희망'이 된다. 이것이 어떻든 당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