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터넷을 하면서 주로 사용한 아이디가 'allisone' 이다.('allisone'이 문법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 아이디는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만난 통찰, '모든 것은 하나'라는 뜻을 영어화한 것이다. 이 통찰이 너무 좋아 '신과 나눈 이야기 한국네트워크'에선 '모두하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대견한 것은 '모든 것은 하나'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이 아이디를 사용함으로써 이 놀라운 통찰을 끊임없이 되새기고자 했던 것이다. 이 아이디를 사용한지 벌써 1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10년은 'allisone'이 내 무의식에 뿌리를 내린 시기가 아닌가 한다. 실로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일들이 '모든 것은 하나'라는 통찰에 대한 시험이었다. 초기엔 내게 다가온 곤란함이 시험의 일종 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모든 것은 하나'라는 통찰이 연결됐다.
'진정 모든 것은 하나인가?'
일상에서 만난 모든 곤란함은 모두 '진정 모든 것은 하나인가?'라는 물음에 다름 아니었다. 이 인식이 확고할수록 시험은 더욱 혹독해졌다. 다행히 [위빠사나]가 그 모든 시험에 함께 해주었다. [위빠사나]는 이 게임(어느 순간 '시험'이 '게임'으로 바뀌었다.)을 지켜볼 수 있게 해 준 훌륭한 방편이었다. 이 지켜봄으로 인해 혹독한 고통의 원인은 '에고'라는게 밝혀진다. 그렇다. '진정 모든 것은 하나인가?'라는 물음이 체화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에고'였다. 이 '에고'가 사라지는 임계점을 지나야 '진정 모든 것은 하나인가?'라는 의문에서 물음표가 떨어져 나간다.
두려움
대부분의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본 것도 믿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이라는 자기 방어 본능에 기인한다. '두려움'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 생명 자신이 가동시키는 방어기제이다. 닫거나 부정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두려움'의 발동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방어기제가 사람을 먹어버리면 인간의 의식성장은 멈추고 화(禍)가 있게 된다. 이것이 도마복음 7절의 '사자에게 먹힘을 당한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가 의미하는 바다. '두려움'은 전체를 알지 못하기에 부분에 집착하는 존재의 속성이다. 어떻게 보면, 영성의 모든 것은 이 '두려움'이 '모든 것은 하나'임을 알아나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통찰을 얼마나 잊고 사는걸까?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큰 생명'과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또 생명에 실려있는 인간의 의식도 마찬가지다. 일견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
이것은 미국, 중국, 대한민국 ... 하면서 각각의 나라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 하지만 지구 차원에서 보면 지구라는 하나의 땅덩어리 위에 국경선을 긋고 인간 차원에서 구분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해는 인간 차원에서의 구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 차원에서의 구분이 이런 이해의 기반 위에 있는가의 여부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온다.
이러한 통찰의 표현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며, 이것은 '두려움'에 묶여있는 인간이 만나는 가장 큰 시험이요, 시련이다. 이 대목에서 예수의 일갈이 상기된다.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자는 복이 있도다.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도마복음 7절)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모든 것은 하나'라는 통찰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다. 이제 나는 꿈꾼다."다른 이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는 이해가 가져올 아름다운 세상을 ...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조심스럽게 깃발을 든다.
"All i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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