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썸네일형 리스트형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믿음의 충돌에 대해 2 저번 글에 이어서 ... 잘 안되는 까닭은 그 순간에도 머리가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이라고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머리가 어떤 속셈을 하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이런 경우는 거의 자동이나 다름없다. 머리는 기본적으로 믿을 줄을 모른다. 머리에서는 믿음이 자라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머리가 믿음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믿음을 앎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가 앎으로 대체할 수 있는 믿음은 굳이 얘기하자면 믿음의 쭉정이 같은 것이다. 그건 차마 믿음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인 것이다. 가슴으로, 온 몸으로, 온 존재로 믿을 때 그제서야 믿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석과 같은 믿음'이라고 할 때의 믿음이 이런 믿음이다. '아, 이렇게 한다.. 더보기 비극과 마법 사이에서의 '하려'함에 대해 사랑을 할려고 해서 눈물을 흘렸다. 무수한 '하려'함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그 '하려'함이 멈추면 마법이 시작된다. 멈추어서 그것을 알때 존재는 비로소 가득차고 그 가득함으로 꽃은 향기를 터뜨린다. 향기는 저절로 우주로 퍼져가고, 그제서야 '하려'함은 존재를 구속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것이 연금술이요 마법이다. 2006/10/03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