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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깨달음에 대한 연가(戀歌) 혹은 무지에 기인한 악몽 : 눈먼자들의 도시


눈먼자들의 도시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8 / 브라질,일본,캐나다)
출연 줄리안 무어,마크 러팔로,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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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그女와 함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았다.
보고나서 그女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며
근래에 본 영화 중 <시암 선셋>과 함께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라고 했다.

나도 잘 보긴 했는데, 초반에 몇 번 졸았더니
나중에 영화 스토리를 따라 잡는데 애를 먹었다.

주말에 무슨 영화를 볼까 검색하다가
독특한 제목에 끌렸는데, 원작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라
별다른 고민없이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의 눈이 먼다는 황당함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불가에서,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안다'는 것을 뜻한다.
호흡을 바라보라거나 몸과 마음을 바라보라고 할 때 이는 모두
호흡을 알아차리거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라는 것인 것이다.

이렇게 볼때,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의 <눈먼 자들>은
<모르는 자> 즉, <무지한 자들>로 볼 수 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눈먼 자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묘사다.

이미 황폐해진 도시 속에서 오물과 쓰레기들을 더듬거리며 지나는 주인공 일행과
먹을 거리를 찾는 무리들의 약탈을 보면서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났다.

그것은 이제껏 내가 보아온 장면 중에 '인간의 무지'가 얼마나 볼품없고 추한 것인지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묘사였던 것이다.

영화는 스토리를 비비꼬지 않고 <눈먼 자들>이 거의 필연적으로 겪게 될
상황으로 곧장 들어간다.

그리고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보라, <무지>를 ..."

영화는 종당엔 '눈뜸'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지만
그나마 영화 속의 <눈먼 자들>이
현실의 <눈먼 자들>보다 낫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씁쓰레졌다.

영화 속의 <눈먼 자들>은 자신이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현실의 <눈먼 자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비극이다.

"그런데 정말 ...  비극이 마법이 되는 세상이 오기는 오는 걸까?" ...라는 회의가 들다가도 곧
"언제든 눈 뜨면 악몽이 끝날텐데, 감았으니 언제가 떠지는 날이 있지 않을까?" ...라는 위안이 슬며시 일어난다.

그러고보면 난 이 대책없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낭만파인가 보다.



PS. 영화 속 <눈먼 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먹을 것과 <눈먼 여자들>의 정조를 바꾸는데
유일하게 <눈뜬 자>인 여주인공이 총대를 멘다.

여기서 한가지 떠오른 의문,
여자에게 그 '정조'란 무엇일까?
그리고 끝무렵의 대사 한토막...

아내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의사 :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아내 :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영화의 마지막에 의사의 아내는 독백한다.

사람들은 눈이 멀었던 동안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리고 눈이 멀지 않았던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200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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