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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본 영화는 다시 안본다는 괴상한 철칙을 지켜오던 나에게 이 영화는 그 같잖은 철칙이 무슨 상관이냐며 쉽게 던져버리게 만든 영화다. 한편으로는 요며칠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된 그女에게 보이고싶었던 마음도 작용했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1996년도 칸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1997년 아카데미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였다. 그런 저간의 영화정보를 인지하고 보니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결론적으로는 스릴러물이라고 하더라도 난 이런 블랙코미디류의 스릴러가 좋다. 웃지 못할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들의 몸부림... 그 몸부림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시골 경찰서장 마지(프란시스 맥도맨드)다.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그녀의 여유로움은 아내의 납치를 사주한 일탈한 남편 제리 룬더가드(윌리암 H. 메이시)와 비교된다. 그런면에서 주제는 '도둑질한 놈은 발 뻗고 못잔다.' 아닐까?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 이야기는 실화로, 이 사건은 1987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당사자들의 요청에 따라 등장인물은 가명을 사용하였으며,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건 발생 그대로를 묘사하였다.>라고...
실제 위의 자막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다는 감상을 자아내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는데, 위의 자막이 코엔형제의 조크였다는 것이다. 코엔형제의 말을 빌면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고나서부터는 모든게 허구다.'라고 했다는데 영화의 시작부터 언급된 위의 자막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성공요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얀 설원 위로 스탭을 소개하는 자막이 들고 나는 중에 어느새 저멀리에서 차 한대가 달려온다. 눈길 위를 달려오는 차는 또다른 차 한대를 끌고오는데 영화의 처음이라 차-나중에 차는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중의 하나다-에는 신경이 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루할 정도의 롱샷 후에 차는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추고 차에서 내린 인물은 어설퍼 보이는 해결사 두 명에게 아내를 납치해주면 가져온 차와 8만 달러를 주겠다는 거래를 한다. 돈 많은 장인으로부터 아내의 몸값으로 거액을 받을 속셈으로 황당한 제의를 한 남편(윌리암 H. 메이시)과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며 불만을 얘기하는 해결사(스티브 부세미) 간의 약속시간에 대한 가벼운 말씨름은 영화의 전개가 무언가 틀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처럼 보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장인에게 얘기했었던 자신의 사업구상에 호의를 보이는 장인의 반응을 보고 계획을 취소하려고 해결사들에게 연락을 시도하나 여의치가 않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납치는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인질극을 연기해야 하는 남편은 장인과 해결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데 해결사들은 해결사대로 검문하는 경찰관을 죽이게 되고, 목격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영화의 미덕은 살인에 연루되는 인간 군상들의 아이러니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속으로 웃게 되는 것이 영화 속의 인물들(심지어 살인자까지도)이 미워지는게 아니라 안타까워지더라는 것이다.
<파고>는 돈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 중에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200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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