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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리뷰는 Daum 무비로거 리뷰 포스트입니다."
프롤로그 : [더 로드]를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영화 '더 로드'......
개인적으론 이 영화를 많이 기다렸다.
이 영화의 원작을 서점에서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보통 필이 꽂히면 바로 구입하는 성격이라(특히 책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책을 집어들 때만 해도 책의 구입은 기정 사실이었다.
책의 (앞 뒤로 살펴본 바 구미가 당기는 스토리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도 그렇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라는 점도 구입을 충동질 했다.
그런데 결국 책을 판매대에 다시 내려 놓았다.
그건 처음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는 카피 때문이었다.
속에선 벌써 '앗, 뜨거워라.' 하고 있었다.
과장 광고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실속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왜 그 카피가 '과장'이었다고 생각됐는지...
아마 순간 두려움이 작용했던 게다.
(나중에 보니, '두려움'은 영화의 중요 포인트 중에 하나임이 분명해 보였다)
사실 책을 구입할 때는 TV프로그램을 선택하거나 영화를 선택하는 것보다도
더 신중 모드에 돌입한다.
그것은 적지않은 책값을 부담하는데다
일정 기간 책을 읽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선택에 따른 책임에서 상당기간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잘 못 구입된 책이 집안에 굴러다니면서 계속 눈에 띄는 것도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다)
책에 대한 기대로 구입하려다 망설이고
기어코는 사지 말자는 결정을 내리니
매카시즘을 연상케하는 지은이의 이름도 선택을 주춤거리게 하는 데 한몫 거든다.
......
책과의 그런 초기의 어색한 인연 때문에
(안 사겠다고 마음먹은 책이 자꾸 눈에 띄는 것은 불쾌하진 않지만, 힘든 경험이다)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곤 무척 반가왔다.
영화를 보면 책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지려나 했는데
시사회에서 보게 되다니...
신이시여, 제가 그리 나쁜 놈은 아닌가 보죠?
......
부채감의 해소 : 영화를 보았다
세상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영화 속의 지구는 절망의 핵폭탄을 맞은 듯,
온통 절망의 그림자로 도배되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름도 없다.
있었을텐데 이름이 필요없게까지 돼버린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 '남자'의 부인은 '여자', 그들의 아들은 '소년' ... 이런 식이다)
정말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면,
현명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년'(코디 스미스 맥피)의 어머니 '여자'(샤를리즈 테론)가
선택한 길(자살)을 갈 지 모른다.
그런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남자'(비고 모르텐슨)와 '소년'은 길을 떠난다.
어딘가 있을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
그곳은 남쪽이고 바다가 있는 곳이다.
이런 것을 보면,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곳을 향해 가는 여정의 길 위에 서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깨달음을 향해 가던, 단순히 행복을 추구하든 모든 인간은
그 길(道) 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영화의 제목 [더 로드]가 왠지 가볍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총을 든 낯선 남자 '베테랑'(가이 피어스)이 다가와서 묻는다.
우리와 함께 하려면 길을 떠나고
아니면 길을 벗어나서 정착하라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년'을 지켜주고 보호하던 그래서 모든 판단을 대신해주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소년'은 이제 홀로 선택을 해야 한다.
'소년'은 한가지를 물어봄으로써 쉽게 결정을 내린다.
"아저씨는 가슴에 불씨를 갖고 있나요?"
......
먹을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사람일지 모른다.
(굳이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이것은 선악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할 때...
아무 것도 먹을 게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더 로드]는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여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자(父子:'남자'와 '소년')가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가는 것도
세상 어딘가엔 아직 살기 좋은 곳이 남아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곳을 찾아가며 부자(父子)는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혹시 잡아 먹힐지도 모르므로...
'소년'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람을 먹지 않을 거죠?"
"물론이지..."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을 때도 그럴 수 있나요?"
"......"
'소년'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먹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며
다른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소년'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만,
자신이 없어서일까? ... 아버지는 말이 없다.
아버지는 대답대신 '소년'에게
가슴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한다.
가슴의 불씨가 꺼진 사람들...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역시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거 같아서 씁쓸하다)
아버지는 '소년'의 고집으로
길에서 만난 '노인'(로버트 듀발)을 돕는다.
모닥불에 둘러앉았을 때
'남자'가 '노인'에게 말한다.
"이 아이는 신이에요. 하늘이 준 축복이죠."
"... 아니길 바라네. 신이 살아갈 세상으로는 너무나 절망적이야."
사실 '노인'과 '남자', '소년'은 모두 신이다.
단지 '노인'은 너무 지쳐있고
'남자'는 자신이 신이었음을 잊었을 뿐이다.
'남자'와 '소년'이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다.
그런데 두 사람의 행동은 상반된다.
아버지는 사람을 피해야 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총을 쏘아야 하고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 사람에게 그만큼 복수를 해야 한다.
'남자'의 입장에서 '소년'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
'소년'은 순진하다.
힘없는 노인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야 하며
자신의 것을 훔쳐간 사람을 동정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가 알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무세운 세상인데...
'소년'은 아직 철이 없다.
그러나 '남자'는 답답하지만 '소년'의 말을 들어준다.
왜?
'남자'도 어렸을 땐 그랬으니까...
나이가 들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 자신도 '소년'이었으니까 ...
그들에겐 총알 2개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지닌 권총에는 총알이 2개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딱 한 방씩 쏠 수 있다는 것을 볼때
총알은 그들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위기에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총알 하나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권총을 '소년'에게 준다.
아들이 혼자 남았고
'베테랑' 아저씨가 '소년'에게 다가와서
자기들과 함께 하겠느냐고 물을 때
아들은 권총을 겨누긴 했지만 이내 총을 거두고 대신에 질문을 한다.
"아저씬 가슴 속에 불씨가 있나요?"
......
아버지인 '남자'와 아들 '소년'이 하나의 세상을 같이 살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두 가지다.
세상을 알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의 원천은 두려움이고
아직 세상을 모르고 있는 아들의 행동의 원천은 믿음이다.
두려움은 총을 사용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인다.
(물론 잡아먹기 위한 적극적인 공격이 아니라 아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지만...)
그리고 이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장애로 작용했다.
(재밌는 것이 세상은 매트릭스와 같아서 아버지의 두려움은 그걸 확인하는 체험을 가져온다)
반면에 아들은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총알이 생명을 상징하므로 총알을 사용한 아버지는 죽는다 ... 이런 해석은 비약일 수도 있겠다)
......
'소년'은 나이가 들어 아버지처럼 '남자'가 될 것이다.
아마 그때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소년'도 총을 사용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 가봐야 알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은 '소년'이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소년'이 아버지의 나이까지 자라서 두려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총을 사용하게 되는 세상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가능성의 질문이요,
희망의 질문이 될 수 있다.
"당신의 가슴 속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나요?"
가슴 속의 불씨를 외면하거나 쉽사리 꺼뜨리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곤란을 느낄 것이다.
아니 곤란을 느낀다면, 최소한 그의 가슴 속 불씨는 완전히 꺼지진 않은 것이다.
영화는 얘기한다.
세상이 워낙 험해서 그렇지
가슴 속 깊은 곳에 불씨가 빨갛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
영화 속 이야기가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둔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 그래서 원작을 소개하는 카피에는
"감히 성서에 비견된다."고 했을 것이다.
전혀 허언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어떤 두려움으로 책을 구입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고편에서 나온 대사를 음미해 본다.
.......
남자 :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이야...
소년 : 어떤 불이요?
남자 : 네 가슴 속의 불 ...
PS. 책을 사 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나도 아직 가슴 속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불을 옮기는 사람이지 않을까...하고 믿어 보는 것이다.
201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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