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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 마법으로

깨달음 있다? 없다?


* 다음 카페 <도론도담>에 적었던 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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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신동엽이 진행하는 SBS '있다!! 없다!!'가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깨달음은 있다? 없다?를 다룬다면 풀 수 있을까?

어떨 지는 몰라도 꽤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 방송작가들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기에 나름 오락적으로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무슨 연유로 이강님이 <깨달음은 없다>파에게 탈퇴를 권고하는 일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도판을 서성거리는 이들이

위 주제에 한번쯤은 걸리는 것은 통과의례 같은 것이겠다.

 

위 주제에 대한 내 견해는 <깨달음은 있다>이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깨달음은 자잘한 생활 속에서의 깨달음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을 말한다.

 

말장난 같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

 

<깨달음은 있는가? 없는가?> 라는 질문을 살펴보자.

 

일단 그것이 우리가 지칭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해도

위 질문엔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이것은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겠다)

또한 생각할 수 없는 것 역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깨달음은 없다>는
단어적으로만 검토하더라도 더 정확하게는

<깨달음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여야 할 것이다.

 

위의 예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으로 들어가는 장점이 있으나

거두절미 해버렸기에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건 그렇고, 궁극의 깨달음...은 과연 있는가?
아니 아예 <궁극>은 존재하는가?

과연 깨달음의 궁극은 어디란 말인가?

 

이 질문엔 패러독스가 있기에
답변자가 '여기가 그 자리다'라고 하면 놓친다.
특정 지점을 지칭할 때마다
그 바깥으로 혹은 안으로 궁극적인 자리(심도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무한하니까....)
이건 마치 <현재> 또는 <지금>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영원히 <지금>을 붙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깨달음이니 궁극이니 신이니 이런 것들은

전체를 놓고 보면 된다.

 

있다, 없다라는 개념과 그 개념마저 없는

공간으로서의 전체 같은 것 말이다.

 

궁극을 만나기 위해 우주 바깥으로 나간다 해서 그곳에 도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그것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여
깨달음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혹은 그 모든 것이 깨달음이다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논제로 데려가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이 우주는 깨달음이 없다라는 인식에게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인식에게는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를 깨닫는 것이 깨달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궁극이냐?>라고 묻는다면 <글쎄...>이겠지만 ...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깨달음은 있는가 없는가>...
<나는 있는가? 없는가?>
<궁극은 있는가? 없는가?>

아마 '나'라는 것마저 없다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나'가 없다고 해서 그 '나'가 없는

그것마저 없지는 않지 않은가?

 

PS, 여기서 그것은 <무한히 비어있는> 어떤 것이라고 해도 좋고

그냥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의 여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2008.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