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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 마법으로

혈투: 제한시간 17시간의 온라인 바둑을 둬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지난 7월말 시작된 촬영의 결과가 엊그제 금요일 밤에 EBS를 통해 방송되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프로그램 연출을 오랫동안 해왔어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방송으로 밥벌이 하는 자에겐 숙명같은 것이다. 이번 작업은 일정에 쫓기는 와중에도 촬영 마무리를 위해 두번이나 대구를 방문해야 했다. 날씨는 살인적이었고(실제 무더위에 죽었다 살아났다) 주말의 편집은 에어콘도 없이 밤을 나는 강행군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방송은 하게 됐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비몽사몽으로 깨어난 아침, 일어나기도 뭣하고 더 자기도 뭣한 상황에서 온라인 바둑을 열었더니 누군가 기다렸다는듯 대국신청을 한다. 온라인 바둑은 돈도 안들고 두어봤자 제한시간 5분 이내의 대국으로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심심풀이로는 제격인 .. 더보기
'진리'에 관한 아주 짧은 생각 메일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래 글을 발견했다. 날짜를 보니 2009년 2월 어느날 내가 나에게 보냈던 메일이다. 내용을 보니 한창 도론도담에서 불교 왜곡 논쟁을 했었을때 잊지 않을려고 메일을 보냈었던 같다. 지금은 그때의 열정도 사라졌고 또 누군가와 '진리'에 대해 논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래 글은 블로그에 글을 모은다는 취지로 포스팅 한다. .............................................................. '진리'를 인식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는 걸로 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진리를 살기에 따로 인식이 필요없는 지도 ... 인간에게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며 도전이다. 인간에게 그것은 '진리'를 인식함으로써 생명의 장.. 더보기
'삶은 괴로움이다 ? - 누가 붓다를 죽일 것인가'에 대한 내 맘대로 해석 * 아래 글은 2009년 5월에 썼던 글인데 포스팅을 하지 않은 채 임시저장이 되었었다. 예전 도론도담 게시판에서 불심 깊은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다 적었던 기억이 있다. 새 글을 적을 마음의 여유도 없고 해서 잠깐 들어와봤다가 이 옛날 글을 포스팅 한다. ...........................................................................................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붓다의 설파를 부인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런데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이 가르침은 자칫 오도되어 많은 이들을 방황과 방랑의 나락으로 빠지게도 할 수 있는 무서운 가르침이다.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이 일갈을 아무 의심없이 무턱대고 받아들.. 더보기
대화, 세번째: 새로운 날을 위하여, 그렇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 제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모두 부정하고 나면, 즉, 내가 아니다를 계속 반복하다보면, 어느순간 저와 분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러 분리하려고 하면 좀 어렵지만, 제 행동과 생각이 낱낱이 보이게 되고, 물론 에고도 있음을 알지만 별로 문제될 건 없는데요. 이러한 경우에는 마치 소화가 되지 않는양 가슴쪽에 뭔가 있습니다. (별로 좋게는 느껴지지 않네요...) 예전에 본 포로수용소의 죄수가 고문을 이겨내기 위하여 썼던 방법인 듯 한데요... 하지만, 명확하게 생각이 보이고, 행동이 보이고, 말할 때도 상관없고, 공포도 보여지는 점 등등등은 좋습니다만, 뭔가 순화를 하여야 할지 속이 좀 꺽꺽 거리게 되네요...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좀 궁금하네요... 예전에 이러다가 아닌 것 같아서 말았던 기억이 .. 더보기
대화, 두번째: 당신의 에고는 안녕하십니까? 첫번째 대화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첫번째', '두번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편의상 붙인 것입니다) ...... -아~~~ 어렵고도 쉽지 않네요... ㅠ.ㅠ 저는 제 스스로를 에고가 떨어져 나갈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현재와 있다는 느낌에는 몸 하나하나 움직일 때마다 기쁨과 희열이 존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중에도 도대체 이 에고는 왜 갑자기 불현듯 나타나나요? 스스로를 드러내고 스스로가 사라져 주면 안될지 참으로 답답하군요... 이러한 중에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만, TV를 보거나, 메일등의 글을 읽고 쓸 때 이넘의 에고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답답하네요... 위의 글에는 답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어떻든 질문을 주신 분은 이 단계에서 에고의 꼬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 더보기
대화, 첫번째: 비극에서 마법으로, 그리고 ... 프롤로그 앞서 소개한 어떤 분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정리를 해놓고 보니 비교적 분량이 꽤 된다. 닉네임과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대화는 뺐다. 지금까지의 그분과의 대화가 '비극에서 마법으로'라는 블로그의 성격에 가장 충실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분의 양해를 얻어 공개하게 되었다. 대화를 공개해도 좋다는 그분은 대화의 공개가 영성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내성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밝혔다. 여기서 명백히 할 것은, 영성의 길을 걸어가는 데에 현재 걷고 있는 -누구든 상관없이 영성의 길을 걷고 있다면- 자신의 길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낫거나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 대화는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전혀 생소한 내용이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 더보기
어떤 대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블로그에 찾아와 질문을 주시는 한 분이 오늘 아침 아래와 같은 글을 주셨습니다. 이분은 지난 3월8일 방명록을 통해 인사를 나눈 후 그뒤로 간간히 질문을 주셨는데 에고의 실체를 찾아나선 후, 상당한 진전을 보이신 걸로 보입니다. 그분의 양해를 얻어, 그동안 그분과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그분은 우리의 대화 공개가 이 길이 맞는다는 전제 아래 글을 읽는 분들에게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셨습니다. 그런 문제들까지도 모두 자신을 길을 걸어가는데 치르어야할 숙제라고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오늘 아침의 글 입니다. ................. 모리님, 제 눈뒤에서 그저 그러함을 지켜보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를 걸.. 더보기
깨달음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 올해 4월20일에 '신이 직접 정의한 깨달음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라는 글을 올렸더랬다.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그 글을 다시 올린다. 불철주야 '깨달음'을 갈망하는 분이라면 이 글을 완전히 소화해 보시라는 권유를 드린다. 신의 언급처럼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너희는 자신이 내보내는 진동, 에너지로 자기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지금 너는 자신이 들었던 이 모두를 말할 수는 있지만, 들은 대로 행하지는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너는 자신에게 이것을 되풀이하여 들려줘야 한다." ... 중략 "뭔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기 전에 직관력과 심능력을 사용하여 자기 내면깊이 들어가 자신의 느낌과 만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중에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 또한 아주 드물다. 하지만 .. 더보기
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3:빛과 소금처럼 되어라 '깨그' 최종편을 올린다. 지난 글에서 산에 오르는 일을 비유로 들어 '깨달음'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런 비유가 '깨달음'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메꿀려고 글을 올리고 난뒤 최종편을 예고했는데 그 최종편을 오늘에서야 올리는 것이다. 조금 더 고백하자면, '깨그' 최종편의 초고는 예고한 다음날 완성되었더랬다. 그런데 이 녀석을 올릴려면 제일 밑에 '등록'이라는 버튼을 클릭하면 되는데 몇 번이나 들여다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종내 올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나?'하고 돌이켜봤다. 무턱대고 덤벼든 탓이 가장 컸고 그러다보니 서둘러 최종편을 완성하자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깨달음'에 대한 .. 더보기
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 2: 공짜는 없다 지난 글에서, '깨달음'을 자신을 놓아주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깨달음'에 대한 견해야말로 사람마다 제 각각이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긴 하다. 그러니 이 글을 심각하게 읽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이 글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모두 '꼭 그렇진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각각의 정의에 따라 백인백색인 '깨달음'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깨달음'의 과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닐까하고 여긴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산의 정상을 향하여 한걸음 두걸음 뚜벅뚜벅 내딛는 일이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산의 정상은 .. 더보기
뒤틀린 자화상, '보상 심리' 그리고 그놈의 '정' 때문에 그놈의 정情 때문에 ...... 미운 정情 고운 정情 다 들어서 ...... 정情 떨어졌어 ...... 정情에 울고 웃고 ...... 잘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 씀씀이는 모두 그 '정'의 행방에 좌우된다. '정'은 우리의 집단무의식 저변에 두텁게 깔려 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매정하다'는 평가를 듣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암묵적인 동의와 공감, 유대는 집단무의식 깊이 뿌리 박혔다. 이 집단무의식 깊숙이 박혀있는 '정'이라는 심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이 '정'이라는 거미줄이 드리워져 있다. 사람들은 가끔씩 이 거미줄을 인식하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이 함유하고 있는 뭐라 하기에 참 거시기한 어떤 것.. 더보기
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 누군가 깨달음에 대해 물어온다. "......" 난 한동안 말이 없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이런 말없음으로라도 그가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깨달음이 뭐지?' 난 속으로 채근한다. '뭐더라...? ㅎㅎ' 그러는 사이 침묵이 흘렀다. 잠깐의 침묵이지만 그것이 길어지면 분위기는 엉뚱하게 흐를 수가 있다. 그래서 이제 무언가라도 얘기해 줄 때가 온다. 어쩌면 ...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주는 무어라도 깨달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일지언정 어슷비슷 깨달음이라 지칭되는 개념에 줄을 대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준 그것이 깨달음을 정의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질문을 한 그의 몫이다. 어찌됐든 나는 그 순간을 모면한다. ㅎㅎㅎ ...... 그런데 이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얘기를 해.. 더보기
깨달음의 그늘:악마성 전에 쓴 글에서, 에고의 거의 마지막이다시피한 치명적 유혹 중에 하나가 '스승'이라는 레테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오늘은 그 '스승'이라는 딱지를 떼고 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나름 완성으로 가는 여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이 '그림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깨달음의 그늘"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이런 일이 있었다. 게시판에서 알게 된 분들을 만났고 자연스레 '도道'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었는데 답변을 하고 나서 살펴보니 나도모르게 목소리가 커져 있었고 단정적인 표현을 많이 썼다. 뒤늦게라도 사과를 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 더보기
깨달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균형감]에 대해 앞 전에, '홀로 가라'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상기했는데 홀로 가는 중에 중요한 것 한 가지 짚어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균형감이다. 자존감이 자신 만의 일로 한정되는 측면이 많다면 균형감은 자신과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십분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실제 영성적으로 많이 앞서 나갔다고 알려진 분들 중에서도 균형감을 잃은 탓에 헛발을 짚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을 보면 균형감이 깨달음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여기서 균형감은 당연히 기계적인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는 점에서 판단을 들지 않는 것과 많이 비슷하다. 판단은 세상살이에 아주 주요한 도구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 들 때까지 심지어 꿈 속에서까지 우리 손에는 판단이 들려 있다. 이.. 더보기
신이 직접 정의한 깨달음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 엊그제 새벽 최종편을 다 읽었다. 거기 나오는 신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 너희는 자신이 내보내는 진동, 에너지로 자기 현실을 창조하 고 있다. 지금 너는 자신이 들었던 이 모두를 말할 수는 있지만, 들은 대로 행 하지는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너는 자신에게 이것을 되풀이하여 들려줘야 한다.' ... 중략 '... 뭔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기 전에 직관력과 심능력을 사용하여 자기 내면깊이 들어가 자신의 느낌과 만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중에 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 또한 아주 드물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 는 경쾌함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너는 무거운 진동과는 전혀 관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는 네가 관찰하고 창조하고 체험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의 진동을 가벼워 지게(l.. 더보기